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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청천

킹제임스성경이 한국 교계에서 외면당한 이유




미국과 영국 내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킹제임스성경. 세계인의 복음화를 이룬 성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들고 온 성경도 이 킹제임스 성경이었다. 이런 킹제임스 성경을 한국의 대형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하려했다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개신교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보면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있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성경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사본이 다르다는 기막힌 사실. 한국 교계에서 사용하는 개역성경은 킹제임스 성경과 내용이 일부 다르다. 근거를 둔 사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교계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모른척 하는 것인지 이런 사실을 들여다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개역 성경의 오류를 파악하는데 실패한 이유다. 전세계적으로 1611 킹제임스 성경이 정통성과 보전성 차원에서 독보적이라는데 만큼은 그 어떤 신학자들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의 교계만 그 정통성과 보전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한국의 주요 교계는 개역성경을 주성경으로 사용해 왔다. 개역 성경을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 대형 교계의 가르침이 잘못 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킹제임스 카톨릭 교황청이 채택한 성경 사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사본이고 1611 킹제임스 성경이 채택한 사본은 안티오크(안디옥) 교회에 뿌리를 둔 사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세상 끝나는 날까지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말씀을 보전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이세상에 온전히 보전된 성경이 존재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보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신앙의 근원적 문제이다. 개역성경과 1611 킹제임스 성경의 가장 큰 논쟁은 이런 역사적인 출발선에서부터 시작된다. 1611킹제임스 옹호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하나도 변개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역성경으로 신학을 배운 목사들은 이런 주장을 이단적이라고 말한다. 번역이 아닌 개역작업을 통해 성경의 많은 부분들의 의미가 바뀌었음에도,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변개된 말씀을 이용해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신학은 신학자들의 손에 들려진 성경에 따라 그 지류와 아류가 형성된다. 그만큼 하나님 말씀은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인문학의 경우 원작자보다 주석을 다는 학자의 작품이 더 인정받거나 읽혀지는 경우가 있다. 논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재편찬된 논어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버전으로 출간되고 있다. 예수를 믿는 개신교도들은 인간의 견해를 읽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이다.


개신교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사도의 시대가 끝나고 교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개신교도들은 예수의 재림 전까지 신과 인간 사이에 또다른 메신저(대언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완전하게 보전된 성경책을 중심으로 형제, 자매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형성해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개역돼 나오는 성경은 하나님 말씀 외 인간의 주장과 견해를 개입시킬 여지를 준다. 마치 논어에 주석을 달아 재편찬 되는 인문학처럼 인간의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고 있다. 명백하게 "말씀을 변개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행위다.


그런데 한국의 교단은 어쩌다가 예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까지 말씀보전을 지키지 않았을까? 한국의 대형 교계는 신학자들에 의해 신학교리체계가 형성된다. 하나님 말씀 외 교계에서 가르치는 추가 가르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목사 후보생들이 성경말씀 자체보다는 성경을 기반으로 스승들이 지향하는 교리체계를 답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교육받은 목사 지망생들이 교회 강단에 서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만들어진 한국 교단의 수는 약 185개이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많은 교단이 왜 필요할까? 교단은 하나님을 위해서도 성도를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목사와 목사 지망생들에게 필요할 뿐이다. 한국 교계는 카톨릭처럼 이렇게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해 왔다.


각 교단에 소속된 교단의 수장들은 카톨릭 교황의 교황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 그들의 교세를 확대 확장하기 위해 교인들의 결속력과 충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정 교단에서 다른 교단으로 가는 것을 배교라도 한 것처럼 여긴다. 성도들은 이런 분위기에 압도 돼 한 번 결정한 교단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이는 교단의 기득권 유지로 보여질 여지가 다분하다. 자신과 교단이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는 핵무기급 철퇴를 가하기도 하고, 심할 땐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이비 교주들이나 할 말을 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1611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는 약 50여 교회에 불과하다, 또 1611킹제임스성경에 기반한 교회들은 교단을 가질 수 없게 금지하고 있다. 1611킹제임스성경이 한국 교계에 정착하지 못 한 이유다. 소위 말하는 장자 교단이라는 장로교에서 1611킹제임스성경을 채택했다면 대다수의 교인들이 지금 1611 킹제임스 성경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신교 탄압은 예수님의 탄생 이전부터 예언된 일이고 예언은 지금까지도 성취되고 있다. 개신교도들을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결사대인 '예수회(제수이트)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심지어 예수회의 일원이 로마 카톨릭의 교황이다. 전세계의 정직하고 신실한 정치적 리더들의 암살 배후에 예수회가 있다는 것은 과거 예수회가 개신교도들을 끔찍하게 학살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적 존재인 사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통한 제3하늘의 하나님의 왕국의 지상 실현을 막고 있다. 주요 인물을 암살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 말씀을 변개하는 것은 하나님 왕국의 지상 현실을 막기 위해 필요한 공작이 아닐까.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는 마태복음 5장 18절의 말씀처럼,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아니 하리라는 그 약속의 말씀은 이 하늘과 땅 어디에는 반드시 존재해야한다. 1611 킹제임스 옹호론자들은 이 성경을 통해 말씀의 보전을 이루셨다고 믿고 있다. 이 성경과 그에 기반한 교리체계에 전세계 교회가 일심동체 되는 것이 종교개혁의 완성이라고 보고 있다. 1611킹제임스성경에 기반한 제2의 종교개혁의 완성이 이루어질 때, 비로서 성경, 교리, 교단, 실행의 제반 문제들이 서서히 풀리게 될 것입니다. 1611킹제임스성경과 그 교리체계를 따라 성도들의 바른 신앙생활 실행의 면면을 보실 때, 제3하늘의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교계가 1611킹제임스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각 성도들의 손에 킹제임스성경에 기반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하루 한 날 충실히 맺어 가는 귀한 삶들로 점철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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