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에서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나 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천자문을 모두 외웠고 '도강'이라는 종합시험에서는 장원을 자주 할 정도로 똑똑했다. 그런데 13살부터 응시했던 과거 시험에서는 매번 떨어졌고 계속 도전했지만 19살이 되던 해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 자체가 없어지자 앞길이 막혀 좌절하고 있을 때, 친한 친구였던 신긍우, 신흥우 형제가 찾아와 배재학당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유교사상이 강했던 시절이라 서양식 교육을 받는 것을 거절했지만 친구들의 끈질긴 권유로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빠른 속도로 영어를 습득하여 6개월만에 배재학당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고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자유주의와 '국민은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라는 민주주의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이와 같은 사상을 채택한다면, 자유를 누리지 못하던 백성들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을 바꾼 한성감옥
고종폐위운동을 하다 1899년 1월에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갇혀 종신형을 선고받고 극심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선교사들이 넣어준 성경을 읽고 1899년 2월 추운 겨울날, 기독교로 개종했다. 1902년 콜레라가 돌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전심으로 돌보아 주어 한성감옥에서만 40여명이 기독교로 개종했고, 이들은 훗날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활동 3.1운동과 임시정부,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태평양전쟁을 예견한 책 "재팬 인사이드 아웃'(일본 내막기)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책이 출판된지 5개월 후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격이 일어나 미군 2,000명 이상이 죽고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져 많은 미국 청년이 묵숨을 잃게 되었다. 책의 내용대로 이승만 대통령의 예언이 맞아떨어지면서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승만을 재평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1943년 11월 카이로 선언과 미일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로 8.15 해방을 맞게 된다. 이승만의 오랜 세월 외교 독립 투쟁의 결과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으나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각각 미군과 소련군에게 점령당했다. 1945년 10월에 귀국한 이승만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한국인이 하나로 뭉쳐 총선거를 치루고, 완전한 독립 국가를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소련이 한국의 독립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한국인이 대동단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
1946년 2월, 소련은 북한에 공산 정부를 세우며 한반도 공산화에 빠른 속도를 내고 있을 때 같은 해 6월, 전북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라고 연설을 했다. 북한에 이미 공산 정권이 들어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반공을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 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산국가에서는 평등이라는 이유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적게 일한 사람이나 성과를 똑같이 나눠준다. 그럼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원시사회가 되고 만다. 그는 수많은 암살시도에도 공산국가가 될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건져내고 5.10 자유 총선거와 헌법을 만든 제헌 국회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1948년 7월 1일에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정하고, 7월 17일에는 헌법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여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했는데, 우리가 지금 기념하고 있는 '제헌절'이 바로 그날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는 인간의 물질적 복지를 늘리고, 정신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주며 이것이 이승만의 가장 큰 공적이라 할 수 있다.
나라 안팎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국가 생존을 위협받자 국가 보완법을 만들고, 친일파 청산, 이승만 라인 선포로 독도가 한국땅임을 분명히 했다. 농지개혁과 교육개혁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모두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 '의무교육제도'를 실시했다. 그 결과 취임 당시, 학교에 가봤던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4%정도였는데, 정권이 끝날 무렵에는 취학률이 96%까지 올라가는 놀라운 성과가 있었다. 또한 문맹퇴치 운동을 전쟁중에도 펼쳐서 해방 직후 80%에 이르던 문맹률이 1958년쯤에는 4%대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시작을 만들었다.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이승만
반공포로석방,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한미상호방위조약(한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미국과 맺은 군사 동맹으로 미군을 최전방에 배치하여 북한이 남침할 수 있는 24개 길목을 지키게 하고 미국은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해외에 주둔한 미군이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하고 북한과 미국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싸우게 하는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북한이 다시 남침하지도 어떤 나라도 우리나라를 쉽게 여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조약으로 미국은 한국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했고, 각종 기술까지 무료로 제공하였다. 전쟁이 없는 기간 대한민국은 경제, 군사,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전례 없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한미동맹 후세에 남긴 값진 선물
북한의 대남 전략 중 7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 첫번째 목표는 바로 '미군 철수'다. 위험천만한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한국 땅에서 미군만 떠난다면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요즘은 말을 살짝 바꿔서 "정전협정 폐지하고 평화협정 맺자! 우리 민족끼리 하나 되자"라고 한다.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전쟁 안 하기로 했으니 미군은 떠나라"라는 뜻이다. 사실 "공산화하자, 미군 철수해라, 평화협정 맺자"라는 건 다 똑같은 말이다. 그래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의 전략은 이승만을 끊임없이 깎아내리는 동시에 '미군 철수,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의 전략은 꽤나 성공해서 우리는 이승만 하면 바로 독재자, 부정선거의 원흉을 떠울리게 됐다. 실제로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그가 잘한 일은 전혀 말하지 않고, 잘못한 것만 과장하고 있으니 역사가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자원 없는 전쟁 폐허에서 시작한 원자력 발전
1956년에 에너지 전문가인 시슬러를 만나게 되어 무한한 에너지인 원자력에 눈을 뜬 이승만은 우수한 과학 인재들을 모아 1인당 6,000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국비 유학을 보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 남짓하던 시절이었고, 나라에서 20달러 이상의 외화를 지출할 때는 본인이 직접 서명할 정도로 달러를 아꼈던 이승만에겐 엄청난 투자였던 것이다. 1956년에 첫 국비 유학을 보내기 시작했고, 이후 4년 동안 8차에 걸쳐 150여 명이 유학을 마쳤다. 그렇게 1959년 7월, 국내 최초로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시작하는데, 기공식에는 이승만도 직접 참석했다.
원자로 건설에는 73만 2천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고 미국과 협상을 하여 두 나라가 반반씩 지출하여 건설하기로 했다. 물론 35만 달러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가난한 나라에서 최첨단 미래 에너지 기술을 도입하고자 나선 것이다.
1978년, 드디어 국내 최초 원전 고리 1호기가 가동됐고 시슬러에게 "원자력을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라고 물었을 때, "한 20년 걸릴 것이다"라고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고리 1호기가 가동되고 32년 후인 2009년엔 우리나라 처음으로 아랍메미리트 연방(UAE)에 원전을 수출했다.
나무 없는 민둥산을 푸르른 산으로
이승만은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는 것을 권장하기 위해, 4월 5일을 식목일로 지정하여, 1949년부터 2005년까지 공휴일로 지켜왔다.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다 베어 쓰면 소용없음을 깨닫고, 연료를 목재에서 무연탄으로 바꾸는 정책도 추진하여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나무 땔감이 차지하던 비중이 1950년대에 90%를 웃돌다가 1990년대에는 1% 이하로 떨어진 통계를 보면, 연료 전환 정책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승만 라인(평화선)으로 영해와 독도를 지켜내다
1952년 1월 이승만은 미국와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도를 포함하는 해양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그어버렸다. 그리고 일본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에 한발 먼저 등대를 세우고 군부대를 주둔시켰다. 일본은 이를 '이승만 라인'이라 부르며 없앨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미국과 대만까지 이승만을 비난했지만 그는 끄떡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평화선'으로 불렀다. 1954년 1월, 평화선 선포 2주년을 맞이해 독도에 '한국령'이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실효 지배함으로써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밝혔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탄생한 자유 시장 경제체제,
1차 개헌(1952)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이루고, 2차 개헌(1954)으로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확실히 했다. 1948년 나라를 세웠지만 불완전한 상태였던 대한민국은 두 차례 개헌을 거쳐 완전한 독립을 이룬 어엿한 자유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3월15일 선거 당일, 자유당 결국 전국적으로 투표함을 바꾸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국민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전국적으로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선거 당일에만 10여 명이 죽고, 60여명이 다쳤지만, 이승만 주변 각료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전국이 시위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던 4월 19일까지도 간신배들은 허위 보고를 하고 있었고 많은 업적을 이룬 건국 대통령의 마지막을 얼룩지게 만들었다.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사태는 커졌고, 4월 21일이 되어서야 이기붕 일당은 비로소 사실대로 말하고 전원 사표를 냈다.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들의 사표를 받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의 3.15로 부정선거와 국민과 소통하지 못한 4.19혁명으로 "국민이 원한다면 내려와야지, 그게 우리 민주주의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하야했다. 퇴임 후, 각국 대표들로부터 위로 편지를 많이 받았던 이승만은 "나를 위로하는 편지는 안 받겠소.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오. 부정을 보고 궐기하는 백성들이 나를 지키니, 이런 날을 평생 기다렸기 때문이오"라고 답장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 이기붕의 욕망을 방치했던 것과 국민의 안위를 살피지 못했던 책임을 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민국을 사랑했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하야 후 하와이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죽어서야 귀국의 승낙을 받고 그의 유해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수십만의 국민이 나와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진리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라를 위해 애쓰고 수고하고 때로는 목숨을 바쳐 수호한 분들의 업적과 공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근대사에 이승만 같은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자유와 풍요로움은 결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지도자를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다 쓰려고 했다. 지금 현재와 비교하면서 보면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교과서가 심히 좌편향 되고 다음 세대들이 한국민족이란 자긍심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지 못하도록, 쓸모없는 나라의 별볼일 없는 국민이란 이런 민족성을 더이상 심어주지 않도록 부지런히 배워서 가르쳐야 주어야만 이 마지막 때에 거룩하고 찬란하게 쓰임받는 민족이 되지 않을까? 모든 국민이 읽어봐야 할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 강력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성세대가 먼저 알아야 전하죠 아이들은 생각보다 역사 관심 없거든요^^
미라클님, 정성 어린 책 소개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많은 어머니와 아이들이 이 책을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을 떠올리며
이 나라를 지켜내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좌파들과 전교조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근대사,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미라클님 너무너무 고생하셨겠어요...!!^^^^ 우리야 행복하지만요...!!!^^^^ 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미라클님ㅠㅠ 참으로 좋은 엄마이자 선생님이십니다ㅠㅠ앞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기준은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기준대로 가는지 아니면 정 반대로 가고 있는지 말이지요. 위대한 업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해요 다시한번 대한의 민주공화국으로!
저도 작년에 유튜브를 통해 이렇게 좋은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지인 중 학부모님들에게 사서 돌렸습니다. 사랑 님 말씀처럼 교육부터 다시 세워야 하겠지요.
지금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애쓰시는 작가님들, 출판사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너무 좋은 책이죠. 우파맘들의 필독서! 저 역시 강력추천합니다. 한동안 아들이 매일 보던 책입니다^^👍 우리 이 책을 가까운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해서 도서관마다 비치하는 운동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이승만 건국대통령 지우기로 인해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는 듯하여 매우 속상합니다. 근현대사 도서관에서 보여주고 싶은 책이 전무합니다. 목차만보고 덮었던 책들이 거의 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음세대 교육부터 틀어쥔 이 정권 여러모로 참 치밀합니다. 우리도 이런 점들은 배워서 정권 되찾아오면 다음세대 교육부터 제대로 신경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