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26일 천용택 국정원장은 취임식을 하다가 비서관에서 메모쪽지 한장을 건네 받고 얼굴이 이그러졌다.
중국에서 암약중인 국정원 직원들 약 30여명이 간첩죄로 전원 체포 구속되었다는 메모용지 내용 때문이었다.
취임식이 끝나고 천용택 국정원장은 비서관에서 쪽지 내용을 다구치자 비서관은 놀라운 보고를 했는데, 전임 이종찬 국정원장이 중국에서 북한요원 최인수를 안기부로 납치해 고문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천용택 국정원장은 즉각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독대를 한 후 그 즉시 중국 정보부로 향해서 구속된 국정원 요원들을 석방 귀국시켜야 했는데, 중국에서 간첩죄로 구속되면 사형이기 때문이었다.
중국 정보부는 한국 국정원이 중국에서 북한 요원 최인수를 한국 국정원으로 납치해 고문했다가 한국돈 10만달러와 한국 주민등록증과 여권을 만들어 다시 중국으로 보내 간첩 행위를 시켰고, 이런 행위는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이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하겠다고 했고, 이에 김대중 대통령은 중국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수용하라고 지시를 했었다.
중국은 재발방지를 요구했고, 그 담보로 한국 국정원이 갖고 있는 정치정보 권리를 중국에 양도하고 중국이 한국에서 정치정보 권리를 행사 할 기구를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약 10일간의 협상 끝에 천용택 국정원장은 구속된 한국의 정보요원들을 모두 다 데리고 귀국을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정원에 중국 정보부가 정치 공작을 할 기구인 “국가경영전략연구원”를 개설하고 이 공작을 집행할 기구인 “국가경영전략연구소”를 민주당에 설치했는데, 이 국가경영전략연구소가 지금의 민주연구원이다.
이 사실은 당시 8260 비밀부대의 공작으로 기록이 되어 있고, 한국은 1999년 5월 말 이후로 자주적으로 정치행위를 할 수가 없는 나라가 되었고, 1999년 5월 말 이후로 중국 정보부가 한국의 정치 공작을 한 내용을 시리즈로 계속 발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