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여 지속적인 승리는 예수님 닮음이다.
<예수님을 닮음의 요새>
영적 전투는 우리 입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순간 시작된다.
그리고 그 승리는 우리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이루어질 때 성취된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단지 현재의 곤궁에서 풀려나거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고 영적 전투에 가담한다. 그러나 영적 전투이건 영성 훈련이건 모든 종류의 영적인 생활은 그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는 것을 빼버리면, 예배, 영적 전쟁, 봉사활동, 악령으로부터의 해방, 그 외의 어떤 것을 통해서도 참된 것을 획득할 수 없게 된다.
구약을 한번 돌아보자.
주님은 고대 히브리 민족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자들도 죄의 권세로부터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의와 평강의 나라로 옮겨졌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 그 최종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예수님을 닮은 존재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 때문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인생의 목표들은 하나님의 목표와 발맞추어져야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은면 타락한 인간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인간은 다시 죄와 속박과 저주의 상태로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 어려움을 일으키고 인간을 궁지로 몰아 넣었던 곳과 비슷한 곳으로 다시 얽매여 들어가게 되어 있다.
듣기 싫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진실이다.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들은 우리의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때는 우리의 등에서 무거운 짐을 벗게 해주는 것을 넘어가는 더 큰 목표가 있다.
이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8,29)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역사의 키를 쥐시고 오늘도 신자들을 몰아가신다.
다른 말로 하자면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목표에 다다를 때 온다.
그 목표라는 것은 '예수님과 꼭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영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신다. 그러면 우리의 영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해 지고 주님의 영광이 홍수처럼 흘러 넘쳐서 온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게 된다. 주님의 임재는 우리의 영 안에 하나의 영적인 요새를 형성시킨다. 그 영적인 요새는 우리가 악을 피하여 숨을 수 있는 하나의 방어진이다.
신자들은 그 요새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관계를 맺으면서 영적인 성장의 길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그 요새 안은 수 많은 악한 영들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함이 더해 갈수록 하나님의 길은 우리 안에 더 넓게 펼쳐질 것이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1서4:17,5:18)
우리가 그 요새 안에 머무는 한 사탄은 우리를 감히 공격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문이 열리면 사탄 마귀는 공격을 하러 몰려온다.
그러므로 마귀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해야 한다.(시9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 마귀와의 전쟁은 단지 사탄 마귀 귀신의 군대를 쳐서 이기는 것, 그 이상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탄 마귀의 공격을 당해서 투쟁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점차로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고매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떠오른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 바로 그 곳, 지존자의 은밀한 곳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를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도 변화시키는 것임을 알면 모든 영전싸움에 대한 해답은 이미 주어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성품을 받아 가지는 것이다.
당신은 두려움이나 의심을 일으키는 귀신의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바로 그 영역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오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라. 당신의 영혼을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로 가득 채워라.
혹시 당신은 정욕의 귀신이나 수치심의 귀신의 장난으로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 앞으로 나오라.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깨끗해진 심령으로 변화를 받으라.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은 사탄 마귀를 이기는 것보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 데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사탄 마귀는 서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탄은 당신을 끊임없이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공격하면 할수록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기는 커녕, 도리어 점점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간다면 사탄은 공격을 멈추게 되어있다.
사탄 마귀가 원래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엉뚱한 결과가 발생하기에 사탄 마귀는 황당한 나머지 다른 곳으로 물러가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사탄 마귀의 유혹이 신도들을 그리스도의 덕을 갖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면 악령은 물러간다.
목표는 '예수님을 닮음'이지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지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악령의 강한 진들을 무너뜨리는 일에 사용하실 때도 있다.
그러나 너무 영적인 싸움에만 몰두하다 보면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정신 집중이 안되는 경우도 생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 상에서 마귀를 직접 다루시지 않았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그 뜻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했을 따름이다.
사상 최대의 영적 전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은 악령들을 꾸짖는 단 한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의 정사와 권세를 가진 악령들은 심판을 받고 무장 해제를 당했다. 이는 정면 대결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이뤄진 것이다.
때로는 영적 싸움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므로 영적전투에 가담한 지도자들과 중보 기도자들은 조심하기 바란다.
사람의 마음을 지옥에 집중시키려는 귀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귀신들의 이름은 '빗나간 초점'이다.
'여기에 이런 귀신이 있다. 저기에 이런 귀신이 있다.'하면서 계속해서 다양한 종류의 귀신들만 들춰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빗나간 초점'의 귀신에 조종을 받는 사람이다. 마치 영계를 보면서 영분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인 척 하지만 사실은 신령한 자들이 아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의 초점은 사탄 마귀 귀신이 아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귀신들에게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도리어 정신적으로 병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영적 전쟁을 치르는 신자들은 그 눈의 초점을 예수님에게 두어야 한다.
사탄 마귀의 역사는 우리의 눈을 예수님이 아닌 다른 곳에 고정시키려는 것이다.
그들은 주위를 산만하게 하고 정신을 흐트려뜨려서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바로 그것이 사탄의 최고의 책략이다.
그러나 다시 우리의 눈이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순간 영적 투쟁과 갈등은 즉시로 멈춰진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레코드 회사의 주인이 있었다. 그는 레코드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레코드의 원판을 만들어 내는 일과 원판을 들어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몇 년 동안을 그 일에 종사한 그는 원판을 편집하는 일에 능수능란하였다.
특히 귀에 거슬리는 소음들을 제거하는 데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음악과 함께 일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우시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나에게 "제 집에는 아주 비싼 음향기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집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음악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진 레코드라도 제가 들으면 제 귀에는 온갖 귀에 거슬리는 잡음소리만 들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뭔가 영적으로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
그의 관심이 음악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직 잡음 소리로 쏠린 것처럼, 영적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 온갖 부정적인 면에만 신경을 쓰게되면 결국 사탄의 전략에 말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빗나간 초점을 가지고 영적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온 세상이 귀신들로 우글거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참된 영분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악령을 보면서 동시에 천사들도 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균형잡인 영적 분별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렇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영분별의 본보기가 열왕기하에 나타난다.
시리아(아람)군대가 도시를 에워쌌다. 선지자 엘리의 수종드는 사환의 심한 두려움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 엘리사는 사환의 영안이 열리길 기도하였다. 그리고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영적 전투는 인간 대 마귀의 전투가 아니다 영적 전투는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인간들 사이의 일도 아니다. 이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 영적 존재들 그리고 저들과 함께한 영적 존재들과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참된 영분별은 마귀의 영역을 엿보는 동시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수많은 천군 천사의 세력도 엿보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탄 마귀의 권세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도 역시 뚫어지게 바라보는 능력이 바로 영분별의 은사이다.
반드시 기억하라 레코드를 들을 때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듣지 못하고 그 음악 안에 들어있는 잡음들만 듣는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바라보지 못하고 마귀들의 추함만 바라본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밤낮을 사탄 마귀와 붙어 씨름을 하느니 차라리 경건한 덕목을 개발시키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쏟는 것이 훨씬 낫다.
실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울증의 귀신들을 이겨낸다.
우리의 산 믿음은 불안과 초조의 귀신들을 물리친다.
적극적인 사랑은 두려움의 악령을 내어 쫓는다.
우리 자신을 계속 그리스도에게 순복시킴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믿음으로 그 분의 말씀을 따르게 되면 우리 안에 영적으로 강한 요새가 형성된다. 그 영적 요새는 어떠한 악령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강한 요새이다.
전능하신 자의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영적 전투는 우리 입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순간 시작된다.
그리고 그 승리는 우리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이뤄질 때 성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