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동영상을 본 것 같은데 유용한 내용이라 나누고 싶어 정리했습니다. ^^
"필수 은사, 영분별을 주시기 위해 순수한 심령을 찾고 계신다"
'비판, 비난, 험담 등'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저희를 괴롭힐 때가 있는데, 이 동영상을 올리신 분도 이것 때문에 지난 한 달간 매우 괴로우셨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도 저희 나라와 각 개인을 괴롭게 하는 영적인 영향력 중의 하나가 '비판, 비난, 험담, 참소, 거짓말, 깎아내리는 것'과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에 대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주님의 제자들은 '비판'하는 마음에 대해 어떠해야 하는지 귀한 가르침을 주시고 있네요. 그리고 이것과 관련하여 '바로 보는 것'을 위해서는 '회개'를 통해 내 눈의 들보를 빼가는 과정과 '주님의 사랑'이 있어야만 진정한 '영적 분별력'을 갖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정리해 주셨네요.
순전한 나드 출판 <영분별> 책에서 발췌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저자의 다른 도서 2권을 갖고 있는데요, 지금 보니 제가 최근에 나눈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 시편48편과도 연관될 수 있는 <하나님의 요새> 에 관한 책이 있었네요. 이것도 기회되면 간단히 소개드리겠습니다.
다른 책은 <거룩과 진리와 하나님의 임재>. 제목만 봐도 와 닿지 않나요? ^^
이 두 권 모두 두께가 얇은데도 영적으로 깊이가 있고 유익한 내용이라 소장하고 있었네요.
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떠오른 말씀은 이사야서 11:1~5절에서 묘사된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특히 3절.
Isaiah 11:1~5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들로부터 한 가지가 나와서
열매를 맺을 것이고,
2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분별의 영이시고
권면과 능력의 영이시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 위에 머무를 것이니,
3 그가 여호와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고,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귀로 듣는 대로만 판결하지도 않을 것이다.
4 그는 공의로 가난한 자들을 재판하며,
공평으로 땅의 겸손한 자들을 판결할 것이고,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고,
5 공의가 그의 허리띠가 되며,
성실이 그의 옆구리의 띠가 될 것이다.
다음은 영상에서 발췌한 내용이고요, 저에게도 좋은 내용이었기에 나눕니다~
🚩 [프랜시스 프랜지팬1️⃣]비판이 멈추지 않을 때, 판단으로 내가 먼저 죽어있을 때 꼭 보세요. 주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바칩니다 🔸️판단 비판의 영을 이기고 능력을 받는 법
<영상제작동기> 부끄러운경험과 회개의 결과로, 한 달여 동안 '비판과 비난'의 영과 많은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이 상황을 극복하면 돌파가 이루어 질 것이며 자유와 회복이 급속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다지 쉽게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앞에 둔 것 같았다, 이 악한 영과는 이미 오래 전에 승리했다고 믿고 있었는데, 계속적으로 황폐한 심령에 고통스러웠다. 결국 하나님께 욥처럼 부르짖었을 때 다음날 아침 이 책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승리와 돌파를 직감했다. 말씀을 나눈다는 것은 떡을 떼는 행위와 같다. 내가 먹은 그리스도의 떡을 나누며 피를 같이 마시는 것이다. -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영상을 바칩니다. 우리 모두 눈 뜬 자로써 실로암 받읍시다. 할렐루야.
1. 영적으로 분별하려는 자는 판단해서는 안됨
모든 인간은 남을 판단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 판단하려는 본능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까지 참된 분별은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땅에 심기지 않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뿌리채 뽑아내려면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남을 판단하려는 경향성이 사라지면 오직 믿음과 사랑안에 뿌리 박은 새로운 마음이 탄생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올바른 영적분별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중심으로부터 불타오르는 사랑의 마음은 주님 자신이 하신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오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영적 분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은혜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영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는 성령의 은사'이다. 그러므로 가려진 것을 보는 '투시의 은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먼저 벗겨져야 하는 베일, 덮개, 가리개, 가면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덮고 있는 베일이다. 우리 자신은 주님의 자비가 필요한 부족한 존재이며, 너무나 큰 죄인이기에 오직 은혜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섬길 수 있다.
우리의 밖의 것을 꽤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속을 드러내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부터 온다,
사실 영분멸의 과정을 통해서 신자는 부패하고 이기심에 가득 찬 자신의 본성을 먼저 보게 될 것이다.
사탄, 마귀나 무당은 자신 스스로의 죄를 보고 회개하는 행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분별의 은사는 어떤 심령력이나 신통술이 아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구원이지 심판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진정한 영적 통찰력을 가지려면 빤히 눈에 보이는 것에 관하여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 도사리는 인간의 진정한 욕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좁고도 숨겨진 길을 통해 들어가서 인간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의 본질을 찾아내야 한다. 영분별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모두 그 '좁은 길'로 걸어들어가야 한다.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도와주려면 하나님의 어린양의 길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분별의 기초를 바로 놓아야 한다.
분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응수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반발하더라도 응수해서는 안된다.
오직 진정으로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만 가져야 한다.
우리가 내쫓으려는 귀신은 현재 자리 잡고 있는 그 사람의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죄를 짓기도 전에 벌써 용서해 주기로 마음을 굳히신 분이시다.
주님의 사명은 사람들을 위해 죽는 일이지, 사람들을 정죄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우리는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영적 분별력이 자라나려면, 먼저 우리 안의 사랑이 자라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안에는 항상 용서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투시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들 안에 들어있는 죄악과 악령의 세력도 보여 주신다.
우리의 지각력이 사람 마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그리스도를 닯아가면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투시의 능력과 함께 발 맞추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싹 터오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치유해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사람을 도와서 그 안에 있는 악령을 축출하려면 다른 사람의 생각에 조차 반응을 나타내 보이면 안된다. 하나님의 용서 가운데 행하지 않으면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고 만다. 비판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자기가 영분별의 은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착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비판하는 판단 능력이 있디. 그러나 인간관계의 경우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흠집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상대방에게 진짜로 그런 흠집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는 흠집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투시와 통찰력의 은사로 먼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뚫어지게 바라보아야한다. 그리고나서 상대방의 죄와 허물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죄에는 눈멀고 다른 사람의 죄에는 민감하며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 자들은 교회에서 골칫덩이가 될 수 밖에 없다.
"비판을 받지 아니 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그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의 티는 보고 네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의 티를 빼라 하겠느냐? 먼저 네 눈의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7:1~5)
회개는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들보"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분명하게 보는 첫 작업은 "회개"이다.
이런 저런 일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분별력, 통찰력을 받았다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고 말하는 자도 있다.
물론 하나님은 다 아시겠고, 그들의 주장대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에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감지하고는 그것을 하나님으로 온 것으로 둘러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 그것을 영적 은사라고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은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돌판에 십계명을 긴 하나님은 오늘날 신자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아로새기신다.
"비판하지 말라" 이 말씀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신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아직도 동일한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게 보는 것
비판적인 육의 생각은 항상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 가운데서 본다.
사실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남을 판단하는 자를 '위선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판단 능력과 판단 의지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가이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돕게 되기를 원하신다.
"비판하지 말라"는 명령의 종결 부분을 보면, 그 참된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러므로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길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밝히 보는 데서 그 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깊고도 철저하게 회개하기 전에는, 즉 육체의 본능이나 직감을 따라 타인을 판단하는 습관이 뿌리 뽑히지 않는 한 영적으로 밝히 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의 죄를 없이 해 주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는 것과 같은 일이다.
눈은 몸에서 가장 민감하고 상처받기 쉬운 곳이다.
그러므로 눈에서 "티"를 빼려면 대단히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즉, 이는 판단, 정죄, 비난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요약하자면 다른 이들을 도와주려면 먼저 '바로 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의 눈 안의 들보를 빼내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장애물이 들어간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빼 주려면 먼저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면 비판이나 판단함 없이 상대의 죄와 허물을 고쳐줄 수 있을 것이다.
판단하지 않는 마음을 주께 구한다면
또한 본능적인 판단 감각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영분별의 은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꿈, 환상, 예언의 말씀으로 많은 것들을 보게 허락하실 것이다.
인간의 편견, 오해, 부패한 마음으로 얼룩지지 않은 순수한 심령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오늘도 찾으신다.
필수 은사, 영분별을 주시기 위해
순순한 심령을 찾고 계신다!!!
ㅋ
처음에 기사 올릴때와 다르게 되있네요
ㅠ
우리가 못 바꾸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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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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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영상 출처 관련 도서 정보입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구입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이 있으니, 좋은 책 출판하신 분들께 구입으로 보답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
<영적 전투의 세 영역>에서 따로 발췌하여 <영분별> 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