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의 20대 랩소디] 학교에서 백신 접종 현황 조사를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이런 문자가 왔다.
‘2학기 개강 대비 코로나19 백신접종 협조 요청’ 관련, 사이트(학교 사이트)에 코로나19 백신 예약 및 접종 현황 조사 기능이 구축되었습니다. 해당 기능에 ‘개인별 백신 예약접종 필수정보 입력’이 8.10(화) 19:00부터 가능하오니, 입력에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 학교 홈페이지 코로나19백신 예약 및 접종 현황 조사 배너를 클릭하면 사진과 같은 창이 뜬다
잡음이 많았던 ‘비대면 전환’
간단히 말해 학교 홈페이지에서 학생들의 백신 접종 관련 정보를 수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코로나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비대면으로 전환된 수업 때문에 혼란을 겪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곤욕을 해결해 줄 방도를 찾는 듯 했다.
‘코시국’에 어떤 학교가 순탄했겠냐마는. 우리 대학의 경우 실습 위주의 수업이 많아 오래토록‘멘붕’을 겪었다. 지난 학기만 해도 몇 수업에서는 소수 인원으로 대면 수업을 이어갔다.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등하굣길이나 캠퍼스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칠 수 있으니 수업을 비대면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 학교에 온 이유는 실습 때문이다. 소수라도 대면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안전’과 ‘학습권’이라는 입장 차이가 분명해, 서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라고 묻기조차 어려웠다.
선생님들 역시 난처한 모습이 역력했다. 혹여나 수업에서 확진자가 나올 경우를 고려해야 함과 동시에 비대면 수업에서도 대면 수업만큼의 만족감을 줘야 하니 답답할 노릇. 몇 선생님들은 ‘줌’을 사용하지 않고 수업 내용을 음성 파일에 담아 공유하거나 아예 휴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비대면-대면의 중간을 찾는 노력도 있었다. 비대면을 원하는 학생들은 비대면으로 대면을 원하는 학생들은 대면으로. 그래서 결국 강의실에서 현장 강의를 줌으로 중계하는 일도 있었다. 당연히 수업은 정신이 없었고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에게 피로감만 주었다.
백신 접종 정보 수급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학교 본부의 백신 접종 독려가 이런 혼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일까. 결국 학생과 선생님들을 위한 불신과 혐오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백신 접종이 의무는 아니지만 맞은 자와 맞지 않는 자가 자연스럽게 분리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화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너 백신 맞을 거야?” “언제 맞을 거야?” “뭐 맞을 거야?” 그러니까 백신 접종에 대한 두려움도 필요성을 느끼는 정도도 천차만별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백신 접종 정보를 수급하고 이것을 수업 비대면/대면에 반영한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론 몇 가지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첫째, 백신을 맞은 학생만 수강이 가능한 수업이 개설된다. 둘째, 백신을 맞지 않은 학생 때문에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된다. 백신을 맞은 학생이 백신을 맞지 않은 학생들을 원망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만약 선생님이 백신 접종을 원치 않는다면 어떨까. 백신을 접종한 학생들의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수업을 들을 때 학생과 선생님의 신뢰 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신뢰가 깨진다면 원활한 수업은 불가능할 것이다.
▲ 코로나19 백신. 사진=gettyimagesbank
백신에 대한 획일적인 입장은 누가 심어주나
영국에서는 얼마 전 400만명이 시위를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노예도, 실험 쥐도 될 수 없다” “백신을 통한 아파르트헤이트(접종자/비접종자 분리 정책)에 반대” “QR코드 찍기는 전 국민의 팔에 전자 팔찌를 채우는 것” 또한 킹스칼리지 런던대 유전역학 교수 팀 스펙터는 “매일 많은 수의 통계가 시민들을 두렵게 하고 있다”라며 “독감과 심장병, 암에 대한 수치를 매일 보고받지 않는 것처럼 코로나19역시 그럴 단계에 진입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400만명의 시위도, 백신 접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싣지 않았다. 시민들은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되며 자연스럽게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여행을 가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지인을 ‘무개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거나 피서지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물속에서 마스크를 안 꼈다’며 서로를 향해 비난한다. 우리가 잃은 건 일상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학교 본부 역시 학내 구성원들에게 백신 접종에 관련된 정보를 주는 등의 섬세한 설득의 과정 없이 무턱대고 협조 요청 문자를 보냈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이 정보가 무엇을 위해 기록되는지 조차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눈살이 찌푸러졌다. 타 대학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완전한 감시사회가 아니냐”며 학생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닐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서로에게 백신 접종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 요즘이다. 얼마 전 언론인 지망생들이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포털 사이트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골자는 ‘언론인이라면 백신을 맞아야 하는가’였다. ‘현직 언론인’이라고 소개한 이는 “언론인을 지향하신다는 분들이 무섭다고 백신 접종 꺼리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나중에 백신 불신 조장하는 기사 쓰실 건가요? 백신은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안전을 위해서도 맞아야 합니다. 언론인을 지향하신다는 분들이 기사에서 제시한 사실도 못 믿으면 어떡합니까...”라며 한 기사를 첨부했다.
나는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어 ‘민트초코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판에 백신 접종이 무서울 수도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인이라면, 학생이라면, 선생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런 프레임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한 것인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공동체’를 위해 ‘국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길 바라는 건 정녕 우리가 원하는 국가의 모습인가. 우리가 방역에 성공해도, 미움과 혐오만 남을까 두렵다.
[기사 출처]:‘학생·선생·언론이라면…’ 백신 획일적인 프레임 누가 심어주나 - 미디어오늘 이혜원 (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