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유럽 보수주의의 마지막 보루 - 왜 카롤 나브로츠키의 승리가 가능했는가
- Mariusz Paszko

- 10월 16일
- 3분 분량

폴란드, 바르샤바
마리우시 파슈코 기자
폴란드 공화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격동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번에 카롤 나브로츠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폴란드는 다시 한 번 유럽 정치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는 단순한 국내 정치 사건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대한 신호였다.
유럽의 보수주의 흐름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폴란드가 유럽에서 보수주의의 마지막 요새가 될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 내부 사회적 과정과 국제적 환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유산과 국가 정체성
수 세기 동안 폴란드는 유럽에서 기독교적이고 민족적인 가치를 지켜온 '최후의 보루(bastion)'였다. 빈 구원을 이끈 얀 3세 소비에스키 왕의 시대부터 공산주의에 맞선 저항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인들은 서구 문명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반복해서 수행해왔다. 이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국민의식 속에 살아 있으며 정치적 선택을 형성한다. 역사적 유산과 애국심, 강한 국가를 강조하는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많은 시민들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다른 나라들과의 공유된 가치
폴란드의 역사는 전쟁, 봉기, 독립 투쟁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자유를 위해 싸우는 다른 민족들에 대한 연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리투아니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등 분할과 점령, 제국주의적 압제에 저항한 나라들과의 이러한 유대감은, 폴란드로 하여금 ‘주권’을 최고의 정치적 선으로 보게 한다. 1950년대 전쟁 이후의 한국처럼, 폴란드는 “다시는 자유를 잃지 않겠다”는 원칙 위에 현대적 정체성을 세웠다. 따라서 현대 폴란드 보수주의는 전통의 수호뿐만 아니라 독립과 자결권이라는 개념을 결합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 정책의 초석이 되었다.
유럽의 문화적 위기에 대한 대응
서유럽은 수년간 깊은 문화적 변화를 겪고 있다. 전통적 가족 가치의 붕괴, 세속화, 급속한 도덕적 자유화. 많은 폴란드인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국가적·정신적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진다. 대중의 인식 속에서 폴란드는 이미 자신의 기반 일부를 잃은 서방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국가의 보수적 비전을 제시한 카롤 나브로츠키는 베를린, 파리, 브뤼셀 관료들이 주도하는 유럽연합 내 흐름에 강력하게 대응하기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동시에 폴란드인들은 독일이 폴란드 경제에 미치는 과도하고 간섭적인 영향. 특히 주요 산업 부문이 베를린의 결정에 의존하게 된 현상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도날트 투스크 총리와 그의 정부가 조장한 것이었다. 또한 독일의 전쟁 배상금 미지급 문제는 양국 관계에서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으며, 폴란드인과 폴란드계 유대인에게 저질러진 범죄의 상기이기도 하다. 독일은 최근 “전쟁 배상금 대신 독일의 안보 보장”을 제안했는데,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속에서 독일이 헬멧과 고물 대포를 보내고 한 달도 안 되어 폐기될 수준이 된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아이러니한 제안이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점령과 100년 넘게 폴란드를 유럽 지도에서 지워버린 제3차 분할의 비극에 대한 기억도 여전히 집단적 의식 속에 생생하다. 이러한 역사적 자각은 서방이든 동방이든, 주권 제한과 표현의 자유 억압, 내부 사안에 대한 간섭 시도에 대해 폴란드인들이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만든다.
경제와 안보를 최우선으로
이번 대선은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위기가 겹친 시기에 치러졌다. 나토의 동부 전선에 위치한 폴란드는 유럽 방위 체계의 핵심 연결고리가 되었다. 카롤 나브로츠키는 군사 안보의 중요성을 이해할 뿐 아니라, 이를 경제 정책과 결합할 줄 아는 인물로 자신을 제시했다. 국내 방위 산업 지원과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가 그 핵심이었다. 유권자들은 그를 단순한 이념 정치인이 아니라 실용주의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사회적 피로
최근 몇 년간 폴란드인들은 유럽 주요 수도들에서 지배적인 자유주의 서사에 점점 더 비판적이게 되었다. 생활비 상승, 불법 이민자 강제 수용 압박, 그리고 유럽 그린딜 관련 규제들은 브뤼셀의 결정이 중앙유럽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카롤 나브로츠키는 주권 수호를 중심으로 캠페인을 펼치며, 폴란드가 모스크바와 베이징에서 비롯되어 베를린과 브뤼셀의 관료제가 실행하는 해로운 이념의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미디어와 현대적 소통의 역할
나브로츠키의 성공은 효과적인 유권자 소통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캠페인은 직접적인 현장 만남뿐 아니라, 영상 채널과 온라인 방송, 페이스북과 X(옛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시각적 메시지에 민감하고 단순하고 진정성 있는 언어로 말하는 정치인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카롤 나브로츠키는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오랫동안 국가기억연구소(IPN) 를 이끌며 국가의 역사 정책을 담당했다. 그는 영어에 능통한 교양 있는 인물로, 국제 무대에서 폴란드를 효과적으로 대표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동한 것이 그 예다. 나브로츠키는 또한 러시아 공산주의 상징을 제거하고 붉은 군대 기념비 수백 개를 해체한 활동으로 인해 러시아 연방의 수배 대상이기도 하다.
보수적 유럽의 미래 지도국으로서의 폴란드
폴란드에서 보수적 가치에 대한 지지가 계속 높아진다면, 폴란드는 강력한 국경, 전통적 가족, 독립적 경제정책을 옹호하는 새로운 유럽 연합체의 중심이 될 수 있다. Three Seas Initiative(삼해 이니셔티브) 내 협력과 인근 국가, 그리고 한국과 같은 글로벌 리더들과의 연대는 브뤼셀과 베를린의 중앙집권적 야심,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영향에 맞서는 저항의 목소리로서 폴란드의 입지를 강화시킬 것이다.
카롤 나브로츠키의 당선은 단순히 한 나라의 미래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국가적 가치와 정체성에 뿌리를 둔 정치가 여전히 유럽에서 가능하다는 신호이다. 폴란드는 서방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은 다른 나라들에게도 영감이 될 수 있다.
Karol Nawroc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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